“선생님은 행복하세요? 저는 살아야 될 이유를 모르겠어요.”
“사는 게 재미없어요. 저는 죽을 거 같은데 부모님은 무시해요.”
“저는 게임만 있으면 돼요. 친구는 필요 없어요.”
“말해서 뭐해요? 해결도 안 되는데….”
청소년들이 상담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토로하는 말들이다.
과거의 청소년들은 사람들과 대면을 통해 긴밀히 관계를 맺는 이미지였다면, 요즘 청소년들은 디지털과 스마트폰에 몰입돼 개인주의의 문화로 자리하고 있다.
상담 현장에서 만나는 청소년들은 다양한 문제에 노출돼 있다. 대학입시 위주의 교육으로 야기된 사교육 과잉과 그로 인한 불안 및 학업 스트레스, 스마트폰 발달로 인한 게임중독, 사회성 부족에 따른 학교 부적응, 왕따 및 괴롭힘, 더 나아가 학교 내 폭력, 도박, 딥페이크 등 그 문제의 심각성이 크고 복잡하다.
심리적인 영향을 미치는 청소년들의 문제를 좀 더 세분화해보면, 정서(우울, 불안, 무기력), 인지(이분법, 자기중심성, 정체성혼란), 행동(폭력, 비행행동, 자해, 자살), 부적응(가출, 성문제, 등교거부), 관계(부모갈등, 친구문제, 이성문제), 성취 영역(낮은 학업성취, 낮은 자존감, 학습된 무기력) 등으로 나뉘는데, 청소년들의 심리적 문제가 다양한 부분에서 증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청소년들이 겪는 여러 심리적 문제 중 ‘우울’은 사춘기의 특성으로도 발현된다. 경미한 우울은 감기처럼 가볍게 지나간다. 반면에 우울을 방치하면 점점 깊은 우울증으로 진행되는데, 청소년들은 이를 잘 알아차리기 어렵다.
상담에서 만나는 청소년들은 심리적 문제에 직면했을 때 또래친구나 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여러 개인적 요인으로 혼자 감내하기 일쑤다. 그러다 보니 우울증과 불안 등의 더 고통스러운 증상으로 이어지게 된다.
청소년들이 심리적 문제에 처했을 때 마음을 열기 어려운 이유는?
청소년들이 심리적 문제를 겪어도 쉽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못하는 이유는 대략 이렇다.
-자기개념(self-concept)을 반영한 ‘자율성’의 발달이 낮은 경우
-부정적인 감정의 표현이 익숙지 않은 경우
-부모와 자유로운 의사소통의 부재인 경우
-기질적 취약성이 있거나, 과거 관계 경험에서 감정개방에 상처가 있는 경우 등
이 외에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내 자녀가 해당되는지 체크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청소년이 경험하는 다양한 심리적 문제는 고통감내력이 약하다면 혼자서는 감내하기 힘들다. 자신에 대한 유능감, 동기, 목표의식, 자기수용 등 자율성도 약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자율성은 자존감의 영역이라고 비유할 정도로 성격의 핵심 영역이다. 자신이 설정한 목표 및 가치에 도달하기 위해 선택하고, 선택 행동을 적절히 통제, 조절, 적응시키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일련의 과정이 잘 작동하기 때문이다.
성격 영역에서 자기개념(self-concept)을 반영하는 자율성의 발달이 약하면, 어떤 힘든 상황에 마주할 때 쉽게 포기하고, 고통을 회피하고, 남을 원망하거나 비난하는 경향과 미성숙한 방어기제를 작동시켜 잘못된 세계관으로 빠져드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미성숙한 청소년 시기는 이러한 긍정적 자기개념을 위한 자율성이 꾸준히 발달되어야 한다. 건강한 자기개념이 잘 완성되지 못한 상태에서, 외부적인 요소들, 즉 부모 및 또래와의 소통 부재로 인한 고립감, 입시로 가중되는 각종 스트레스와 불안감, 수없이 열등감과 비교문화에 빠지게 하는 과도한 SNS 환경 등은 자율성의 발달을 크게 침해한다. 이는 청소년에게 다양한 심리적 문제를 야기하며 우울증, 불안증 등의 정서, 사고, 행동 영역 등을 심화시킨다.
청소년들이 심리적 문제에 당면했을 때 보내는 신호는?
그렇다면 청소년들이 심리적 문제를 겪을 때 보내는 신호를 부모는 어떻게 알아챌 수 있을까? 평상시 청소년들의 언어 표현이나 신체증상 호소를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그 신호를 감지할 수 있다. 주로 다음과 같이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엄마 학교 조퇴하면 안 돼요?/ 학교 있는 것 자체가 공포스러워요/ 전학 가고 싶어요
친구들이 나를 이상하게 보는 것 같아요/ 급식 먹기 싫어요/ 무기력하고 우울해요/ 친구들과 말하는 게 무서워요/ 그냥 혼자 자는 척해요/ 은근히 나를 따돌리는 것 같아요/ 배가 아프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소화가 안 돼요/ 용돈 더 주면 안 돼요? 등
아동, 청소년, 성인의 성격 영역 중 가장 우선순위는 아마도 자율성일 것이다. 갑자기 힘겨운 상황에 직면하여 인지, 정서, 행동 등의 심리적 고통을 겪을 때 잘 대처할 수 있는 방패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상담 현장에서 청소년들을 실제로 대면하고 심리검사를 해보면 자율성의 발달이 약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자율성 부족은 자신에 대한 부정적 지각뿐만 아니라 인지 오류를 일으키는 우울과 불안 등의 정서 영역의 심리적 문제로 이어진다. 그만큼 자율성은 다양한 심리적 문제라는 화살들을 막아낼 방패가 될 만큼 중요하다.
청소년기의 자율성을 발달시키려면?
자기개념과 연결된 청소년기의 자율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대다수 부모가 지나치는 경우가 많고, 그 구체적인 방법을 모르고 있다. 자녀들에게 다음의 방법들을 적용해보면 어떨까?
-자기의 장단점을 통합해 긍정적 자아상을 키워주기
-부모의 지지적인 표현과 정서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건강한 자기 주장력을 키워주기
-동기와 목표를 설정해 스스로 선택 및 책임감을 갖게 하기
-주도성과 효능감을 키워주기
청소년 자녀와 함께 상담을 요청해 온 부모들은 ‘우울을 고쳐주세요/ 학교에 잘 다니게 해주세요/ 성적이 안 떨어지게 해주세요’ 등 빠른 해결 중심의 상담을 기대하는 경우가 많다. 자녀들의 호소 문제를 표면적인 시각으로만 바라보고, 내적인 영역을 잘 살피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상담을 통해 급한 불을 우선적으로 끌 수 있지만 내면의 약한 부분을 단단하게 다지지 않으면 또 다른 힘겨운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재발될 여지가 있다.
모든 부모들은 자녀를 많이 사랑하기에 그만큼 최선을 다해 도움을 주려 한다. 하지만 종종 바람직하지 않은 방법으로 접근하는 경우도 있는데, 학교에서 공포감과 불안감에 압도당하는 자녀에게 등교 압박을 하고, 관계에서나 정서적 고립감으로 우울 사고가 가득해 자해를 함에도 자녀 스스로 버틸 것을 요구하는 식이다. 이런 부모들을 보면 청소년들이 겪는 숨 막히도록 슬픈 고통이 헤아려져 상담자로서 안타깝다.
물론 해결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 전에 부모가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청소년들이 발달연령상 미성숙하더라도 하나의 인격체라는 것이다. 부모는 내 아이가 어떤 상태든 상관없이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수용해줄 필요가 있다.
이런 환경이 부여될 때 청소년은 상담에도 적극적으로 동기를 갖고 참여하며 다양한 심리적 문제로 인한 증상들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된다. 상담에서 만나는 상당수 부모들이 자녀의 그런 바람을 무시하거나 이해한다고 하면서도 귀를 열고 있지 않다.
요컨대, 청소년이 겪는 심리적 문제에서 부모가 절대적으로 큰 역할을 발휘해야 한다. 상담을 통해 청소년의 자율성이라는 방패가 발달하고 내면이 이해받는 순간, 청소년은 부모에게 희망을 발견하며 심리적 문제도 회복될 수 있다. 그렇게 청소년은 첫걸음을 떼는 아이처럼 자율성이라는 방패를 무기 삼아 건강한 마음의 기지개를 켜는 것이다.
